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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 미술 탐험_특별한 이유_예술의 특징 [미술속으로]

by thanq_땡큐 2024. 9. 27.

1.  고대 근동 예술 탐험 : 문명의 요람을 향한 여정!

지구상 최초의 위대한 문명이 탄생한 곳으로 시간을 거슬러 여행하는 것을 상상해 보자.

고대근동은 오늘날 중동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세계문명의 중요한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 4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메소포타미아 / 고대 이집트 / 고대 이란 / 레반트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도시를 건설하고, 정부를 만들고, 놀라운 예술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곳이기 때문에 

종종 "문명의 요람"이라고 불린다. 이제 고대 불가사의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고대 근동의 역사는 기원전 4000년경의 수메르 문명의 등장과 함께 시작한다.

고대 근동은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를 포함한다.
고대 근동은 문명의 출발지로 여겨지고 있다.

이 당시 문자가 가장 먼저 발명되었고 또 그 문자들(특히 페니키아어)은 세계에 널리 전해졌다.

도자기 만들 때 쓰는 돌림판과 수레의 바퀴와 물레방아 바퀴가 발명된 곳이며,

중앙집권화된 정부와 법전과 제국이 최초로 형성된 곳이며, 사회 계층과 노예 제도가 최초로 형성된 곳이며,

또한 조직적인 전쟁이 가장 먼저 일어난 곳이다. 그리고 천문학과 수학의 기초도 고대 근동에서 형성되었다.

 

2. 고대 근동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 근동 예술을 세계 최초의 대규모 예술 쇼로 생각해 보자. 

이 지역의 사람들은 글쓰기를 발명하고 거대한 도시를 건설했으며 놀라운 예술 작품을 만들어 

자신들의 힘, 신념, 삶의 방식을 과시했다. 예술은 단지 보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야기를 전하고 신을 숭배하고 왕과 제국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근동이란 원래 오스만 제국(1299~1922)이 최대 영토를 가졌을 때의 그 강역을 대체적으로 가리킨 낱말이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근동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중동'으로 대체되었다. 외교적으로 중동이라는 낱말이 더 많이 사용되었지만

고대 근동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주로 성경에 나오는 땅들을 가리키는 용도로 고고학자들과 역사가들에 의해 사용되며 자리 잡았다.

 

3. 고대 근동의 예술 특징

1. 메소포타미아: 권력과 의식의 예술
종종 [문명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에는 수메르인 / 아카드인 / 바빌로니아인 / 아시리아인과

같은 문화가 포함되어 있다.  종교적, 정치적 권력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종교적 구조물 및 지구라트 :

지구라트(거대한 사원 단지)는 신을 기리고 통치자와 신 사이의 연결하기 위한 의식을 위한 제단으로 지어졌다. 

우르의 지구라트와 같은 경우, 계단식 디자인과 피라미드의 결합으로 평지속에서도 눈에 띄어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부조 및 석비 :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군사적 승리, 종교 의식 및 왕실 칙령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상세한 석조 부조와

석비(대형 석조 기념물)를 만들었다. 하나의 상징적인 예는 시각 예술과 최초로 작성된 법률 코드를 결합한 _함무라비의 비석_이다.

원통 인장 :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문서와 항목에 서명과 비슷한 용도로 인장을 사용했다. 

점토를 얇게 편 후 -> 옆면에 그림이 조각된 인장을 굴려 -> 점토에 그림이 찍히도록 만들었다.

(마치 떡 절편 찍듯이)

이 인장은 기능적이고 장식적이어서 신화적인 장면, 사회 양식, 동물 등 다양한 문양으로 만들었다.

 

대표작품 : 함무라비 법전 (기원전 1,750년경)
함무라비 법전은 바빌론을 통치한 함무라비 왕이 만든 가장 초기의 고대 바빌로니아의 법전이다.

알려진 법률 코드 중 하나가 새겨진 높이 2.25m의 검은 현무암 기념물이다. 아카드어 쐐기문자가 새겨져 있으며 설형문자로 기록되었다.

비석의 윗부분에는 권위의 상징을 건네주는 태양신 샤마시와 함무라비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1000년에 걸쳐 시행된 이 법전은 당시의 사회적, 법적, 도덕적 규범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본문 282개조로 법기술적인 규정을 발달시켰으며 '눈에는 눈으로'의 탈리오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함무라비 법전 외형이미지

 

2. 고대 이집트: 영원과 신성을 위한 예술
고대 이집트 예술은 사자(使者)의 생명이 영원히 부활한다 생각하여 묘실 내에 현세를 재현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 내세, 파라오의 신성한 본성에 중점을 두었다. 이집트 화가의 사명은 신이 정한 질서를 지킬 필요가 있었다.

이집트 그림은 원근법이 없고, 인물을 그릴 때 측면과 정면을 혼용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인체에서 머리는 항상 측면 -> 어깨와 몸통은 정면 -> 허리에서 아래 부분은 다시 측면인 식이었다.

동물은 기본적으로 측면이었다. 벽화는 점토 또는 석고질의 모르타르를 바른 위에 그려진 것이었다.

초기왕조시대의 분묘에는 다채로운 기하학적 무늬가 있을 뿐 형상적인 회화는 많이 발견되지 않았다.


벽화 및 상형문자 :

무덤과 사원의 이집트 벽화는 장식적 목적과 서사적 목적으로 일상 생활, 종교 의식, 사후 세계로의 여행 장면을 묘사했다.

이 이미지에는 이집트의 신성한 문자 체계인 상형문자가 함께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그 자체로 시각 예술 형식이었다.

조각 및 이상화된 형태 :

신, 파라오, 일반 사람들의 조각상과 조각은 고도로 양식화되었으며 엄격한 표현 규칙을 따랐다.

인간의 모습은 종종 얼굴과 몸통 정면의 합성으로 표시되었다.

이집트 조각상은 실물과 같은 형태와 이상적인 형태를 모두 묘사하는 데 놀라운 기술을 보여준다.

 

고대 이집트 대표작품 : 네페르티티의 흉상(기원전 1,340년경)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아케나톤의 아내인 왕비 네페르티티 아름답게 채색된 석회암 흉상이다.

3,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디자인, 긴 목, 기하학적 장식의 왕관으로

투탕카멘의 가면과 함께 고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왼쪽 눈이 그려져 있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3. 고대 이란(페르시아): 우아함, 조화, 제국
고대 이란의 예술, 특히 페르시아 제국 시대의 예술은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광대한 제국의 권력과 부를 반영한다.

페르시아 예술은 우아함, 아름다움, 그리고 각 지역의 영향이 혼합된 것이 특징이다.

아케메네스 왕조 건축과 페르세폴리스 :

페르시아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는 광대한 궁전 단지, 웅장한 홀, 웅장한 부조 조각을 갖춘 제국 건축의 걸작이다.

Apadana(청중 홀)는 왕에게 경의를 표하는 제국 전역의 대표자들을 

묘사한 거대한 기둥과 복잡한 조각이 특징인 주목할만한 구조물이다.

금속 세공 및 고급 예술 :

페르시아 장인은 금, 은, 보석으로 고급스러운 제품을 만드는 데 능숙했다. 

그들은 제국 내의 다양한 문화에 영향을 받은 혼합된 스타일을 보여주는 복잡한 금속 그릇, 보석 및 의식용 물건을 생산했다.

정복된 문화에 대한 존중 :

페르시아 예술은 종종 정복된 지역의 관습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페르세폴리스의 부조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다양한 지역의 인물이 묘사되어 있으며, 

이는 페르시아 제국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상징한다.

 

고대 이란 대표작품 : 페르세폴리스_부조(기원전 500년경)

이 당시 다리우스 1세 시대인 기원전 518년부터 조영되기 시작해 계속 궁전들이 들어서고 

온갖 보물들이 쌓여 부귀영화를 자랑했다. 다른 민족이 세웠다가 점령된 후 페르시아의 영토로 편입된 

나머지 수도들과 달리 처음부터 페르시아인들이 세운 도시로,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상징했다. 

다만 페르세폴리스는 역대 왕중왕들이 즉위식을 거행하는 의례적 수도의 역할을 했고, 

제국의 실질적 수도는 최대 도시이자 행정 중심지인 바빌론이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제국의 샤한샤가 조공을 바치러 온 사신들을 접견하던 알현실로

쓰인 아파다나 궁전을 오르는 계단에는 사신들이 온갖 귀중품을 바치는 행렬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거대한 기둥과 건물을 통해 웅장함과 부조의 섬세한 페르시아의 조각기술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4. 레반트: 문화와 종교의 교차로
현재의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포함하는 레반트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및 기타 지중해 문명 간의 

문화적 교차로였다. 레반트 예술은 종교적, 문화적 영향의 용광로로서의 역할을 반영한다.

가나안인과 페니키아 예술 :

레반트 지역에 거주했던 가나안인과 페니키아인은 상아 조각, 금속 세공품, 보석과 같은 소규모 사치품을 만드는 데 능숙했다.

그들의 예술은 종종 지역 전통과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모두 반영하여 지역의 상호 연결성을 잘 보여준다.

성경 예술 및 유물 :

레반트는 초기 이스라엘 및 성경 예술과의 연관성으로도 유명하다.

도자기, 인장, 비문과 같은 유물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과 이웃 민족의 일상생활과 종교 관습을 관찰할 수 있다.

사원과 도시 건축 :

레반트 도시는 종종 강력한 요새, 궁전, 사원으로 건설되었다. 하솔의 가나안 사원과 같은 구조물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및 이집트 사원 단지와 유사성을 보여주며 건축 스타일을 혼합하여 독특한 지역적 표현을 만들었다.

 

레반트 대표작품 : 라기스 (기원전 700년경)
라기스는 성경에 언급되는 쉐펠라의 고대 주요도시였으며, 니네베(현재의 이라크)에 있는 아시리아 왕 산헤립의 궁전에서

나온 일련의 돌 구조물로, 유대 도시 라기스의 포위 공격과 함락을 묘사하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 남부구에 위치한 국립공원에 위치한 부조에는 아시리아 군인들이 성벽을 습격하고, 포로를 잡고,

전쟁에서 약탈하는 모습이 나와 있다. 이는 아시리아 제국과 레반트 왕국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다.

 

기원전 14세기 아마르나 서한에서 처음 언급되며, 출애굽후 이스라엘 민족의 정복전쟁으로 점령하여 진멸시켰다.

기업의 분배로 라기스는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이후 유다의 르호보암이 라기스를 요새화하였으며,

아마지야가 반역자들에게 도피하였다가 살해당하기도 하였다. 라기스 공성전은 센나케립의 궁정의 부조로 지금까지 묘사되어있다.

선지자 예레미야에 따르면,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읍들을 쳤을 때,

유다의 남은 성읍들이라고는 아세가와 라기스 뿐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