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미술이란?
고대 말기에 기독교가 나타나고 기원후~가톨릭과 정교회가 나뉘는 서기 500년 이전까지의 서기의 미술을 지칭한다.
중세 유럽의 미술이 대부분 기독교 미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 초기 기독교 미술(300~700)중에서 주로 이탈리아와 지중해 서쪽지역의 미술을 지칭한다. 유적은 기독교의 지하 매장소인 카타콤이 대다수이며 미술은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카타콤은 주로 로마 교회에 집중하는데 벽면을 장식하는 벽화가 눈에 띈다. 카타콤에서 다양한 비밀 상징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물고기, 닻, 양 등을 사용하여 상징했다.
초기 기독교는 1세기에 로마 제국 내에서 종교 운동으로 등장하여 결국 뚜렷하고 영향력 있는 신앙으로 발전했다. 초기 기독교의 예술과 문화는 유대의 작은 신자 집단에서 기원후 4세기에 로마제국의 국교로 확산되면서 그 발전을 반영한다. 초기 기독교 예술의 특징, 영향, 주제를 살펴보고 그것이 성장하는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살펴보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7절)
대표적으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벽화 연작을 그리며 성경의 여러 사건들을 모티브로 작품을 제작했다. 그중 아담의 창조라고 알려진 작품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당시 유럽의 미술가들이 아담과 하와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초기 기독교 미술의 특징
상징성과 단순성 :
비밀 상징과 이미지: 기독교 초기에 신자들은 로마 당국에 의해 박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비밀리에 신앙을 실천했다. 그 결과 기독교 미술은 발각되지 않기 위한 숨겨진 상징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물고기(익티스), 닻, 선한 목자는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일반적인 상징이 있다. 예를 들어 물고기는 그리스어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의 약어였으며, 닻은 희망과 확고함을 상징했다.
단순하고 겸손한 스타일 :
초기 기독교 예술은 기독교 예배의 단순성과 세속적 관심보다는 영적인 관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반영하여 겸손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단순함은 신, 황제, 신화에 초점을 맞춘 로마 이교도 예술의 호화로운 스타일과 대조된다.
카타콤 예술 및 장례식 예술
카타콤 :
기독교 예술의 초기 사례 중 다수는 카타콤, 즉 로마 성벽 밖의 지하 매장지에서 발견되었다. 이 공간은 성서적 장면, 신앙의 상징, 그리고 선한 목자(예수님의 상징)나 오란트(기도하는 인물)와 같은 인물을 묘사한 프레스코화와 조각으로 장식되었다.
구원과 영생의 주제 :
카타콤바는 매장지였기 때문에 예술은 부활, 구원, 영생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요나와 고래, 사자 굴 속의 다니엘, 나사로의 부활 등 희망과 구원을 전하는 성경 이야기를 묘사하여 위로를 주고 약속에 대한 믿음을 고취시켰다.
로마 예술 스타일의 채택
로마 기술 차용 :
초기 기독교인들은 프레스코화, 모자이크, 조각 등 로마 예술에서 스타일과 기술을 차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만의 주제와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이를 각색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로마 스타일의 초상화를 사용하여 그리스도, 사도, 성인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모자이크와 장식 예술 :
기독교가 더 많은 추종자와 대중의 수용을 얻게 되면서 예술은 더욱 정교해졌다. 모자이크(작은 색의 돌이나 유리 조각으로 만든 이미지)는 교회 벽, 천장, 바닥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어 종교적 주제와 성서적 이야기를 전달했다.
초기 기독교 예술에 대한 영향
이교도 로마 예술 및 건축 :
초기 기독교 예술은 로마 예술 전통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독교가 여전히 박해받았을 때, 기독교 예술가들은 로마 스타일과 상징을 혼합하여 사용했지만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로마 바실리카 및 초기 교회 :
초기 기독교 교회의 디자인은 로마 건축 양식의 대규모 공공 건물인 바실리카를 기반이었다. 대성당은 긴 본당(중앙 홀), 측면 통로, 후진(건물 끝에 있는 반원형 공간) 및 수랑(십자형 팔)을 갖춘 예배 장소로 사용되도록 개조되었다. 기독교 교회 건축의 표준이 될 레이아웃을 형성한다.
유대인 전통과 성경
기독교는 유대인의 맥락에서 출현했으며, 기독교의 예술적 주제와 상징 중 상당수는 히브리어 성경(구약성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초기 기독교 예술은 종종 그리스도의 생애를 표하거나 믿음, 구원, 예언을 주제로 한 구약의 장면을 묘사했다.
회당의 영향 :
최초의 기독교 이미지 중 일부는 유대 예술, 특히 회당 장식에서 유래되었다. Dura-Europos(현대 시리아의 유적지)에 있는 회당에는 초기 기독교 도상학과 유사한 성서적 장면을 그린 벽화가 있다.
초기 기독교 미술의 주제와 발전
비밀 상징에서 공공 예술까지 :
기독교가 더욱 확립되고, 결국 CE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 치하에서 합법화되면서(CE 313년 밀라노 칙령과 함께) 기독교 예술이 공개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했다.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 교회가 세워졌으며 기독교 도상학은 더욱 눈에 띄고 표준화되었다.
그리스도와 성인에 대한 묘사 :
예수에 대한 초기 묘사는 상징적이고 젊었으며, 종종 그분을 선한 목자 또는 오란트(기도하는 손을 들고 있는 인물)로 묘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왕이나 입법자로서 왕좌에 앉아 사도나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더욱 일반화되었으며, 이는 그분의 신성한 권위를 보여준다.
기독교 도상학의 발전
기독교 미술이 발전하면서 특정 주제와 이미지가 표준이 되었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 "Christ"의 처음 두 글자로 만든 기호인 치로(☧)는 예수와 기독교를 상징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성경 내러티브 장면 :
예술을 통한 스토리텔링은 기독교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프레스코화, 모자이크, 부조에는 성탄절(그리스도의 탄생),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부활과 같은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이 문맹이었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예수님의 생애와 성경 이야기를 교육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학적 강조와 예배 공간 :
콘스탄티누스 대성당(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름을 따서 명명)의 건설은 기독교 예술과 건축에 전환점이 되었다. 로마의 구 성 베드로 대성당과 예루살렘의 성묘 교회와 같은 교회는 예배와 순례의 주요 중심지가 되었다.
예배에서의 모자이크 :
모자이크는 교회 내부를 장식하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며, 하늘에 대한 황금빛 신성한 비전을 묘사했다. 예를 들어, 라벤나에 있는 갈라 플라키디아 영묘는 무성한 풍경과 선명한 푸른 하늘로 둘러싸인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묘사한 생동감 넘치는 모자이크로 가득 차 있다.
대표 작품 : Junius Bassus의 석관(c. 359 CE)
원산지 및 설명 : 유니우스 바수스(Junius Bassus)의 석관은 기독교로 개종한 로마 총독의 소유였던 화려하게 조각된 대리석 석관이다. 아담과 이브, 사자 굴 속의 다니엘, 왕좌에 앉으신 그리스도 등 구약과 신약의 순간을 묘사한 일련의 성경 장면을 높은 부조로 표현했다.
의미 : 석관은 기독교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초기 기독교 예술이 어떻게 고전 기둥, 아치, 상세한 인물의 사용과 같은 로마 스타일을 적용했는지 보여준다. 이는 로마 예술성과 신흥 기독교 내러티브의 혼합을 강조하고 보다 공개적이고 정교한 신앙 표현으로의 전환을 나타낸다.
초기 기독교 예술은 새로운 종교 공동체의 믿음, 희망, 가르침을 표현하는 강력한 방법이었다. 숨겨진 상징과 지하 지하 묘지에서 시작하여 웅장한 바실리카와 정교한 모자이크로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초기 기독교 예술은 수세기에 걸친 종교적 표현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로마의 고전 전통과 새로운 신앙의 영적 메시지를 연결했다.
비잔틴 미술의 유래와 특징
비잔틴은 5~15세기 후반까지 동로마 제국, 우크라이나, 러시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 정교회 국가에서 발생한 건축과 회화 등의 시각예술을 가리키는 용어로, 동로마의 수도이자 정교회의 총본산인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옛 이름이 비잔티움이었던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비잔틴 미술은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동로마 제국의 계승자인 비잔틴 제국에 등장한 예술 양식을 말한다. 비잔틴 예술은 기원후 330년 창립부터 기원후 1453년 가을까지 발전하고 발전하여 그리스, 로마, 기독교의 영향을 혼합하여 종교적 주제, 영성 및 신성 전달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스타일로 발전했다.
4세기 이전 세속적이며 로마 미술은 쇠퇴한 반면 비잔틴 예술은 거의 다 종교적인 표현과 구체적으로는 조심스럽게 통제된 교회 신학을 비인격적인 예술 용어로 바꾸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하기아 소피아가 비잔티움 예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교회에서 오늘날까지 성물로 사용되는 아이콘의 기본적인 구도는 모두 이 시대에 완성되어 바뀌지 않은 채 여전히 그 구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비잔틴 미술을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이콘을 보는 것이다.
비잔틴 예술의 주요 특징, 주제, 영향과 그 대표 작품을 살펴보겠다.
영성과 상징주의
영적인 것에 대한 강조 :
고전 그리스와 로마 예술에서 볼 수 있는 자연주의와 인문주의와는 달리, 비잔틴 예술은 영적 진리와 신성한 신비의 세계를 전달하려고 했다. 인물은 지상의 존재로 묘사되지 않고 영적인 이상을 표현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것이 바로 비잔틴 아이콘과 모자이크가 종종 다른 세상을 강조하면서 평면적이고 양식화된 외관을 갖는 이유.
상징 및 추상화의 사용 :
비잔틴 예술가들은 상징주의를 사용하여 종교적 주제와 신의 존재를 전달했다. 인물은 엄숙한 표정으로 정면으로 묘사되며, 종종 몸과 얼굴이 길며 현실적인 인간의 특징보다 신성함을 강조한다.
아이콘
성상 :
비잔틴 미술의 가장 중요한 형태 중 하나는 성상이다. 이는 종교적 이미지로, 나무 패널에 만든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또는 성인의 초상화인 경우가 많다. 아이콘은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신자와 신 사이의 연결을 촉진한다고 믿어지는 신성한 물건으로 간주된다. 성화의 창조와 숭배는 비잔틴 영성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아이콘 및 금색 배경 :
비잔틴 양식의 아이콘과 모자이크는 영원하고 천상의 영역을 나타내는 금색 배경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물들은 아몬드 모양의 큰 눈, 엄숙한 표정, 신성함과 신성한 지위를 상징하는 금빛 후광 등 매우 양식화되어 있다.
모자이크와 건축
모자이크 :
비잔틴 미술의 특징 중 하나는 교회 내부를 장식하기 위해 모자이크를 광범위하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비잔틴 모자이크는 테세라라고 불리는 색유리, 돌 또는 금박의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져 빛을 반사하여 반짝이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러한 모자이크는 종종 벽, 돔, 애플스를 덮고 있으며 성경, 성도 및 성스러운 인물의 장면을 묘사한다.
건축 발전 :
비잔틴 건축은 중앙 계획 교회, 돔, 돔을 지지하기 위한 펜덴티브(구의 삼각형 부분) 사용으로 유명하다. 건축물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위쪽으로 유도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이는 천국과 신성으로의 상승을 상징한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 중 하나는 원래 기독교 대성당으로 건축된 콘스탄티노플의 아야 소피아다.
비잔틴 예술에 대한 영향 : 로마와 그리스 유산
로마의 뿌리 :
비잔틴 예술은 로마와 그리스 예술의 전통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종교적인 내용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기둥이나 아치와 같은 고전적 형태의 사용은 지속되었지만 기독교 주제와 영적 표현에 맞게 조정되었다. 로마 건축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비잔틴 교회와 그 장식의 기념비적인 규모에 영향을 미쳤다.
동부 및 초기 기독교 영향
기독교 상징주의와 신학 :
비잔틴 제국은 동방 정교회의 심장이었기 때문에 이 예술은 기독교 주제에 초점을 맞춰 매우 종교적이었다. 비잔틴 예술가들은 십자가, 물고기, 치로와 같은 초기 기독교 예술의 상징 사용을 그렸다. 그러나 그들은 세속적 현실보다는 영적인 현실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이러한 상징을 더욱 양식화되고 추상적인 형태로 변형했다.
동부 예술의 영향 :
비잔틴 예술은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점에 있기 때문에 동양 예술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 페르시아, 시리아 및 이슬람 예술은 복잡한 패턴, 상세한 장식, 비잔틴 스타일에 통합된 장식 모티프에 대한 강조를 가져왔다.
신학적 논쟁 : 성상파괴주의
성상 파괴(726-843 CE): 비잔틴 미술사에서 중요한 사건은 성상 숭배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있었던 성상 파괴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종교 이미지가 파괴되었고, 우상 숭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성상 제작이 금지되었다. 결국 성상에 대한 숭배는 843년(정교회의 승리로 알려짐)에 복원되어 비잔틴 예배와 예술에서 성상의 중요성이 재확인되었다.
비잔틴 예술의 주제와 발전 :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표상
Christ Pantocrator :
비잔틴 예술에서 그리스도를 가장 흔하게 묘사하는 것 중 하나는 Christ Pantocrator입니다. 이는 "전능자" 또는 "모든 것의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이 묘사는 책(복음서)을 들고 손을 들어 축복하는 몸짓으로 엄숙하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이 이미지는 그분의 신성한 권위와 영원한 본성을 강조한다.
테오토코스(신의 어머니) :
성모 마리아는 비잔틴 미술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종종 "신을 품은 자"를 의미하는 테오토코스로 표시된다. 그녀는 아기 그리스도를 안고 있거나 기도하는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이 이미지들은 헌신을 고취시키고 신자들에게 모성적 중보자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천상의 건축과 공간 :신성한 감각 창조
관객을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잔틴 건축과 예술. 교회는 빛과 금으로 가득 차도록 설계되었고, 모자이크와 아이콘은 전략적으로 배치되어 신의 존재를 불러일으켰다. 돔과 곡선 공간을 갖춘 건축학적 배치는 이러한 영적 상승을 강화했다.
교회의 서사적 순환 :
많은 비잔틴 교회는 서사적 순환, 즉 성경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배열된 모자이크나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었다. 이러한 주기에는 일반적으로 구원 이야기를 통해 예배자를 안내하는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및 성인의 생애 장면이 포함되어있다.
대표작품 : 소피아 대성당(537년 완성)
-원산지 및 설명 : "거룩한 지혜"를 의미하는 아야 소피아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의뢰로 537년에 완성되었다. 기독교 대성당으로 지어졌으며 나중에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후 모스크로 개조되었다. 하기아 소피아는 지상 180피트 높이의 거대한 중앙 돔과 펜덴티브 사용으로 유명하며, 빛으로 가득한 광대한 열린 공간의 창조성을 볼 수 있다.
-의미 : 아야 소피아는 기념비적인 규모와 천상의 아름다움을 결합한 비잔틴 건축의 정점을 나타낸다. 지금은 대부분 분
실되거나 가려진 모자이크는 원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성인들의 장면을 묘사했다. 아야 소피아는 이후 정교회의 모델이 되었으며 비잔틴 제국의 정신적, 정치적 힘을 상징했다.
대표작품 : 판토크레이터 그리스도의 모자이크(11세기)
-원산지 및 설명 : 판토크레이터 그리스도의 가장 상징적인 모자이크 중 하나는 시칠리아의 몬레알레 대성당과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에 있다. 이미지에는 그리스도께서 한 손에는 책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축복의 몸짓으로 들어올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금 테세라를 사용하면 배경에 빛나는 빛이 나며 그리스도의 신성한 빛을 상징한다.
-의미: 이 묘사는 비잔틴 종교 예술을 매우 대표하며 권위, 위엄 및 영적 깊이를 느끼게한다. 그리스도의 정면의 직접적인 시선은 보는 사람을 신성과 연결하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제작되었다.
비잔틴 예술은 영적 상징주의, 웅장함, 종교적 헌신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조합이다. 이는 고전 세계의 자연주의에서 벗어나 숭배자와 신을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신성하고 초월적인 스타일을 창조한다. 반짝이는 모자이크부터 우뚝 솟은 돔에 이르기까지 비잔틴 예술은 동방 정교회와 광범위한 예술사 모두에서 종교적, 문화적 전통에 지속적인 유산을 남겼다.
=> 본질적으로 초기 기독교 예술은 단순성 / 겸손 / 서술적 주제에 초점을 맞춰 기독교 이미지의 토대를 마련한 반면, 비잔틴 예술은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이를 웅장하고 영적이며 고도로 양식화된 이미지로 변모시켰다. 신성한 현실의 표현과 금, 추상화, 기념비적 장식에 중점을 둔 비잔틴 미술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천국으로 끌어올리고 기독교 신앙의 영광과 위엄을 강조하는 것을 목표로 천상의 분위기를 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