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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_법칙을 깨다_대표화가 [미술속으로]

by thanq_땡큐 2024. 10. 14.

thanQ_[미술속으로]_신고전주의

법칙을 중시하는 신고전주의를 깬 - 낭만주의시대

 

이 시기를 이중혁명의 시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유는 정치혁명과 산업혁명이 동시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치혁명은 프랑스혁명으로 대변되었고,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가속화한 시기였다. 프랑스혁명과같은 혁명이 실제로 진행되자 불합리한 요소들이 많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각국에서는 낭만주의 운동이 발생하게  것이다. 그래서 낭만주의 예술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고 자유롭다.

 

18세기부터 흔히 부르주아라고 일컫는 상공업으로 부를 쌓은 시민들(제3계급)이 성장하였다. 이들이 예술의 주요 소비층으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이때문에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당시 제 3계급 대중들의 취향에 맞는 예술사조가 주류로 떠올랐는데, 이 때 유럽에서 유행했던 예술과 학문의 경향을 일컬어 낭만주의라고 한다.

역사학에서는 소비자 층의 변화에 주목하는 반면에, 음악사나 미술사에서는 낭만주의 시대 예술가들 스스로의 주도적인 변화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바로크/로코코 시대의 예술가들이 창작자 자신의 세계가 없이 이전에 있었던 것을 챙기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에 대한 반발로 개개인의 공상 세계를 주장하는 낭만주의가 생기며, 이때부터 창작자 자신의 감정과 철학을 드러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표 화가

1. J.M.W 터너

영국은 나폴레옹이 직접 침략하지 못한 국가로 J.M.W터너의 [눈폭풍 : 알프스를 넘고 있는 한니발과 부대원들](1812)의 그림을 보면 신고전주의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화면을 압도하는 눈보라에 휩싸여 사람들은 화면 너머에 티끌처럼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자연의 숭고미 : 숭고미는 거대한 자연의 압도적 두려움이 아름다움으로 변화하는 순간의 감정)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터너는 밤에 4시간 동안 폭풍우 한가운데에서 관찰했다고 한다.

눈보라: 항구 어귀에서 나온 증기선(c. 1842). 캔버스에 유채. 테이트 브리튼, 런던

 

 

2. 모네

또한 1873년 모네의 [해돋이 인상]의 작품으로 인상주의의 포문을 열었다.

인상주의’의 창시자이며,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화가로 손꼽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대상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전통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자연의 빛과 색채를 중시하며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두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대상의 색과 형태를 포착하여 그리는 인상주의로 당대 미술계의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켰다.

 

인상주의라는 단어는 클로드 모네의 [해돋이 인상]라는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그림은 1874년에 처음으로 선보였는데, 전시에 대한 비평문에서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이 작품이 스케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들은 인상주의자라는 단어를 자랑스럽게 받아들였다.

클로드 모네_해돋이 인상 Soleil levant

 

3. 장 레옹 제롬 : [스핑크스 앞에선 보나파르트]

미술사에서 나폴레옹을 주의 깊게 살피는 이유 중 하나로  [동방원정]이 있다.

나폴레옹은 1798에 영국군의 통로를 차단하고 이집트를 정복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다.

약 3만 명의 군사와 수백 명의 학자와 화가와 함께 했는데 이때 화가들의 주요 작품들을 보면 이집트에서의 재미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1798년 9월 19일 장 레옹 제롬의 [스핑크스 앞에선 보나파르트]는 기자 피라미드 앞을 산책하다가 스핑크스 앞에 선 나폴레옹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4. 들라크루아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들라크루아는 프랑스에서 배출된 혁명가 중 한 사람으로 보다 복잡한 캐릭터였다. 그는 대상을 정확하게 모사하는 것보다 상상력을 중요시했다. 당시 아카데미는 고상한 그림의 인물은 반드시 고상한 인물로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통해 오랜 고정관념을 깼다. 이 작품 속 혁명을 상징하는 자유와 이성을 대표하는 해방된 노예 '마리안'의 모습이 담겨있다.

가슴을 드러낸 것은 마리안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혁명의 주도 세력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노동자)였다. 이들은 사람 영웅을 따르는 것이 아닌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를 따랐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이 작품으로 인해 들라크루아는 주인공을 영웅이 아닌 평범한 여인을 주인공으로 세웠다는 이유로 7년간 전시를 금지당했다.

 

낭만주의에서 인간 영웅은 지연재해나 운명 같은 예측 불가능한 힘에 의해 파멸되는 존재로 파국에 처한 인간의 위대한 패배를 선호했다.

그전 신고전주의에서 중요한 법칙이었던 원근법, 비례법칙 등을 깨고 혼돈을 표현하는 역동적인 구성을 표현한 낭만주의 화가들의 수많은 고민한 흔적을 볼 수 있으며, 혁명의 핍박 속에서 인상주의 등 새로운 기법들을 배출하고 어느 시기보다 낭만적이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