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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와 살롱_예술계의 흐름 [미술속으로]

by thanq_땡큐 2024. 10. 9.

013_신고전주의와 살롱[미술속으로]_thanQ

 

신고전주의와 살롱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는 18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발전한 미술 사조다.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문화의 고전적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은 장식, 시각예술, 문학, 연극, 음악, 건축을 이른다. 18세기 계몽주의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 19세기 초까지 이어졌으며, 후에 낭만주의와 대립한다. 바로크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던 태양왕 루이 14세의 죽음 이후 중앙집권이 약화되고, 귀족들의 밝고 유쾌한 향락문화인 로코코 미술이 유행한다. 로코코의 회화 주제는 주로 육체적 쾌락, 우아함, 가벼운 사랑을 담고 있었다. 북미 식민지를 독점하여 기세 등등한 영국의 귀족, 엘리트들에게 로코코는 프랑스의 퇴폐적이고 타락한 문화 혹은 지난 유행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왕족과 귀족 중심의 바로크와 로코코 미술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고, 신고전주의가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면서 신고전주의 미술가들은 정권을 미화하는 예술 작품을 생산하게 된다.

 

당시 프랑스의 모든 화가는 도제 시스템으로 키워졌다. 각각의 길드에는 여러 공방이 소속되어 있으며 공방에는 장인과 도제가 속해있는 식이었다. 공방의 활동은 왕에 의해 통제받지 않았으나 프랑스 아카데미가 설립되면서 정부, 귀족, 교회에 의해 중앙집권적 통제가 시작되었다. 아카데미의 설립 후 모든 화가들이 거기에 소속되고 왕의 주문과 지도를 받았다. 아카데미 회원들은 1년에 두 번 열리는 살롱전에 참가할 수 있었는데 이 전시는 공공에 열람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이 모이는 행사였다. 이 살롱전을 통해 왕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가 그들의 고귀한 미적 취향을 대중에게 전파하게 되었고, 공적인 미술비평의 기회도 형성되었다. 도제는 아카데미 회원이 되기 위해 살롱전 1위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그 후에는 로마에서 1년간 수련을 한 뒤 아카데미의 작품 심사를 받아야 비로소 가입이 가능했다.

살롱전에서 회화 작품의 가치는 역사, 인물, 장르, 정물, 풍경 순으로 등급이 매겨졌다. 역사화의 주제는 자연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것(성경, 신화, 고대사, 당대의 역사적 사건 등)에서 유래되었으므로 가치있다고 여겼다. 여성화가의 경우 아카데미에 가입은 가능하나 그랑프리 수상은 불가능했으며 역사화를 그릴 수 있는 훈련도 받을 수 없었다.


예술계의 흐름

근대적 의미로서 새로운 양식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신고전주의의 전파 당시 화가, 상인, 디자이너, 건축가 등의 예술계 사이에 공통적 흐름이 있었다. 그들은 국제적으로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의도적으로 '취향'을 만들어 전파했고, 빠른 보급으로 이윤을 창출할 수 있었다. 당시 폼페이 발굴 등으로 고대 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는 그랜드 투어의 호황으로 이어졌다. 그랜드 투어는 유럽의 귀족 청년 층이라면 6개월 이상 이탈리아(로마, 나폴리)를 여행하며 고대 문화를 답습하던 경향을 말한다.

 

신고전주의는 18세기 중반 유럽에서 나타나 19세기 초까지 이어진 예술 운동이다.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화려하고 정교한 스타일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전했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과 문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러한 고전적 이상의 부활은 이성, 질서, 기본 원칙으로의 복귀에 대한 계몽주의의 강조와 폼페이 및 헤르쿨라네움과 같은 고대 유적지의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촉진되었다.

신고전주의 시대의 예술가들은 고전 예술의 단순성, 대칭성, 규율 있는 형태를 되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예술이 영웅주의, 애국심, 도덕적 미덕 등의 주제를 묘사하면서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이상을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주제에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사건, 신화적 장면, 금욕적인 표현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 초상화가 포함되었다.

그림에서 신고전주의 예술가들은 명확한 선, 균형 잡힌 구도, 절제된 색상 팔레트를 사용하여 명확성과 조화를 이루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는 '호라티우스의 맹세',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같은 작품을 통해 도덕적 서사와 시민의 의무에 초점을 맞춘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 그림들은 종종 희생, 명예, 합리주의와 같은 미덕을 홍보하는 우화로 사용되었다. 1780년대 역사화에서 그의 지적인 특징은 로코코의 경박함에서 고전적인 엄숙함과 엄정함으로 취향의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이 변화는 앙시앵 레짐의 마지막 시기의 도덕적 풍조와 조화를 이룬다. 이 시기에 그는 베네치아적인 색채 사용으로 유명한 앙피르 양식(Empire style)을 발전시켰다. 다비드는 많은 학생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이는 19세기 프랑스 예술에서 (특히 아카데미적인 파리 살롱 회화에서) 그를 굉장히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


이 시기의 조각품은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와 같은 예술가들이 고대 조각상의 우아함과 해부학적 정확성을 모방한 작품을 만드는 등 고전적인 영향을 반영했다. "큐피드의 키스로 부활한 프시케"와 같은 카노바의 조각품은 매끄러운 표면과 신고전주의 미학을 구현한 이상적인 형태를 선보였다.

 

대표적인 예술 건축가

에티엔-루이 불레(Étienne-Louis Boullée)

건축가는 기능성과 상징적 의미를 결합한 건물을 설계했으며 종종 진보와 합리성의 계몽주의 이상을 반영했다. 주목할만한 예로는 파리의 판테온과 런던의 대영 박물관이 있다. 그는 건축을 통해 감정과 사고를 표현했고, 독특한 시각과 다양한 크기를 통해 숭고함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구, 원기, 업데이트와 동일한 형태를 즐겨 사용하고,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활용하여 공간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불레는 건축을 단순한 기능적 공간이 아닌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표현 도구로 보았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뉴턴의 기념비 프로젝트" 설계도에서 그는 지름 15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형 건축물을 설계하여 우주와 자연의 법칙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고자 했다. 내부는 낮에는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별처럼 보이게 하고, 밤에는 중앙의 거대한 램프가 태양을 연상시키는 매우 정교하고 기술적인 면모가 보인다.

불레_아이작 뉴턴의 기념비 프로젝트



신고전주의 운동은 단순한 예술적 스타일이 아니라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포함한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이는 보다 순수한 가치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과 고대 문명에서 유래한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규율, 질서, 도덕적 명료성에 대한 신고전주의의 강조는 서양 예술의 발전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